2001년 개봉하였던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는 부인과 함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의 인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었다. 바로 전 해 ‘글레디에이터(Gladiator)’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러셀 크로우의 물오른 연기력을 바탕으로 이듬해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쓸면서 지금까지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 몇 안 되는 수작으로 영화 팬들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영화 속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들 중 뇌리 속에 똑똑히 남아있는 한 장면은 내성적인 존이 그의 친구들과 술집을 찾아 미녀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극중 존은 미녀가 남자 무리 중 가장 경쟁력이 있는 ‘킹카’를 선호할 것이라는 상식을 깨고, 미녀 역시도 경쟁 관계 속에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그 중 매력적인 남성을 선택하기 위한 의사결정으로써 남성 무리 중 두 번째로 경쟁력이 있는 남자를 택할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게 되고 상황은 존의 생각대로 흘러가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존 내쉬는 경쟁이 가미된 관계 속에서 의사결정의 변화를 설명하는 ‘내쉬 균형이론’의 영감을 얻게 된다. 즉, 동적(dynamic) 관계 속에서의 의사결정을 다루는 원리를 깨달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간 마케팅 관련 연재를 통해 마케팅 활동에 있어 기본이 되는 개념들을 위주로 이야기를 나눠왔다. 이는 모든 조건과 상황이 변화되지 않는 정태적(static)인 전제 조건하에서 지식의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기에 그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시시각각 새로운 사건과 사고, 경쟁자들의 반응과 대응 등으로 매순간 동적(dynamic)인 관계가 형성되기에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응용하는데 있어서 관계와 상황이 고려된 전략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 내쉬가 주장한 ‘균형 이론’은 인간의 의사결정뿐만이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을 설명하는데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기업 역시도 의사결정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마케팅에서는 이 같은 변화되는 환경에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경쟁기업이 취하는 마케팅 전략, 환경의 변화, 경쟁 구도의 변동 등에 의해 그 기업이 취하는 마케팅 전략은 언제든 변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전쟁에 임함에 있어 상대의 움직임을 간파 및 대응하여 자기 진영의 전략을 선택하여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모습과 같다. 마케팅 전략이 ‘전쟁’이나 ‘경기’에 비유되는 이유다. 때론 공격적인 입장에서 서기도하고, 상대가 거세게 되받아치면 방어적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공격을 단행하기도 하고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을 땐 상대적으로 취약한 측면을 활용하여 공격의 활로를 찾기도 한다. 이것이 경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마케팅 전략의 대표적인 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이라고 하는 환경적 요소다. 경쟁이 없는 기업 환경에서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 수립의 필요성과 활용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터이니 구지 시간과 돈을 들여 고객의 마음을 잡으려는 유인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경쟁이 없는 환경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경쟁이 없다고 생각되는 블루오션(blue ocean)도 그 시장이 매력적이라 소문이 나면 금방 경쟁자가 차고 넘치는 레드오션(red ocean)으로 바뀌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경쟁’이라는 환경적 상황은 이론가, 실무자를 떠나서 이제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고려하는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축구의 승부차기를 예로 ‘경쟁’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 골키퍼 없이 공격수 혼자 골킥을 연습하는 경우 좌·우 어느 방향으로 차는 것이 유리할지를 궁리하는 선수는 없다. 골대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에 어느 방향으로 차든 관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다르다. 공격수는 골키퍼를 염두에 두고 어느 방향으로 볼을 찰 것인지를 결정하며 골키퍼 역시 공격수가 어느 쪽으로 볼을 찰지를 추측하여 몸을 날린다. 현실에서의 승부차기의 성패는 공격수가 어느 방향으로 볼을 차겠느냐와 골키퍼가 어느 방향으로 몸을 날리느냐. 즉, 공격수와 골키퍼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나의 의사결정이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상대의 의사결정 역시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양방향의 상호작용의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자 ‘경쟁’ 환경의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에선 어떤 전략을 펼쳐라.’라는 식의 정태적 전략 수립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당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한다.’는 제스처만 보여줘 경쟁사들이 이에 대응한 더욱 쉬운 전략을 수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경쟁’이라는 환경 요소를 명확히 직시하였다면 환경의 변화를 명확히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우고 각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전략적 경우의 수를 숙지해 놓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공격적 마케팅 전략을 들고 나온 상대에게 더욱 공격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으며, 상대의 기세가 꺾일 때까지 최대한 방어적인 포지션을 취하다가 기습을 가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도 그 기업의 생존과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는 한 번의 마케팅 전략이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이 성공이 기업의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보장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경쟁기업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던 기업들도 변화되는 경쟁 환경과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역전 기회를 찾을 수 있음을 뜻한다. 흔히 마케팅 분야에서는 어떤 분야에 가장 먼저 뛰어든 주체가 가지는 이점을 ‘시장 선도자 우위(First Mover Advantage)’라 설명한다. 콜라 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대중화에 성공한 코카콜라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콜라 판매량으론 팹시 콜라에게 한번도 1등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모습이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인텔 등을 보고 있노라면 시장에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 선도자의 이점을 뺏어오기란 분명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경쟁 상황이 심화됨에 따라 ‘시장 후발 주자의 우위(Late Mover Advantage)’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에 먼저 진입한 선발주자가 가지는 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거나, 간접적인 학습을 통해 시장 진입에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이뤄진다는 점, 먼저 진입한 기업들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 할 것인지를 완전히 확인한 뒤에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쟁 관계에서의 이점 덕분에 현재는 시장 선도자 우위와 시장 후발 주자 우위를 주장하는 관점이 균형을 맞춰가고 있는 실정이다.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비아그라도 결국 영업력에서의 약점을 보이며 후발주자인 시알리스에게 자리를 내줘야만 했고, 미국의 대표적 완성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도 기존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였던 포드사의 약점을 간파하여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단숨에 미국 시장 선두 업체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경쟁 환경은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답’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오히려 그 속에선 적절한 대응만이 살길임을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경쟁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경쟁업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이들 간 주고받는 효과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A업체가 B업체와의 경쟁 구도에만 집착한 나머지 C업체에게 일격을 받아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상황 역시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에 기업의 경영진은 주요 경쟁 기업뿐만 아니라 새롭게 생겨나는 신생기업들의 기술 및 서비스에도 관심을 가지며 이들이 취하는 마케팅 전략에 어떤 식의 대응을 할 것인지를 유연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많은 현상들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인 이 같은 상황이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기보단 그 현실을 마주하고 경쟁 상황을 고려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경영자 및 경영진의 유연한 사고일 것이다. 경쟁 환경을 기반으로 한 동적 마케팅의 시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기업이 유연함과 신속함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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